정읍의 송명섭 장인이 빚은 막걸리도 유명하지만 죽력고 또한 전통주로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니
얼마나 좋은 술일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터에 건웅이가 막걸리에 이어 죽력고를 준비하여 와서 패밀리들과 마실 기회를 가졌다.
식당에 가서 마실까도 생각했지만 한 가지 음식으로 마시기엔 안주가 좀 부족할 것 같아서 집에서
마시자고 했더니 경우가 칠보에서 싱싱한 육회까지 준비해왔다.
음식이 준비되고 죽력고를 한잔씩 따라 향을 맡고 입안에 가져가니 은은한 쑥향의 한약냄새가 감돌면서
목 넘김이 시원스러우면서 칼칼한 감이 느껴진다,,,,,
말 그대로 술이 아니라 약이라는 느낌이 든다.
알콜도수가 높은 32도의 술인데도 술꾼들이어서 그런지 거리낌 없이 잔을 비우는걸 보니 명주로서 손색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죽력고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밖에 나가 2차 제의도 있었지만
오늘같이 약술을 마실 때는 적당하니 마셔주는 것이
약발 지대로 받고 몸과 마음이 평온하고 행복해 지는 법,,,,^^,,,
출처 : 조선시대 3대 명주, 죽력고를 아시나요 - 오마이뉴스
푸른 대나무의 초록빛이 녹아 있는 듯한 노란 빛깔. 대나무 향과 솔잎 향이 코끝을 찌르고 목으로 넘기는 순간 부드럽고 빠르게 온몸에 퍼지는 짜릿함이
기분 좋다. 꼭 30일 걸려 만든 술을 3시간 만에 비울 만큼 입맛 당기는 술. 바로 '죽력고'다.
죽력고는 정읍시 태인면에서 대나무를 이용해 전통적으로 빚는 특유의 술이다. 푸른 대를 구워서 끈끈한 진액을 뽑아 만든 술이기 때문에 죽력(竹瀝)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소주에 죽력을 넣고 고은 약술의 일종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고(膏:'진하게 고아서 만든 물건'이라는 뜻)'를 붙여 '죽력고'라
부른다고.
죽력고를 만나러 가는 길은 조금 난감했다. 분명 피향정 근처 100m 이내라고 알고 있기에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봤는데 '죽력고'라는 단어를 너무나
생소해 하는 것이었다. 혹시나 싶어 '그럼 대나무로 술 만드는 곳을 아느냐'고 물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막걸리 만드는 곳은 아는디'라는 말을 따라
골목을 헤매니 그제서야 모습을 드러낸다.
담도 없고 간판도 없는 그 곳은 오래된 양조장이었다. 움푹 패인 돌에서 자라는 이름 모를 수초들 너머로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고풍스레 자리하고 있다. 크기가 제멋대로인 나무 토막 의자에 앉아 이리저리 구경하며 더위를 식히던 중 죽력고 주조자 송명섭(49)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2003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죽력고의 희소 가치와 맛을 인정한 외지인들이 투자를 위해 먼저 방문해 있던 터였다. 송씨는
기자를 포함한 손님들을 거실로 안내하자마자 연분홍색의 술을 건넸다.
분명 죽력고는 아니었다. 큰 물 잔에 얼음과 함께 가득 채워 넣은 술은 빛깔이며 맛이 마치 칵테일 같았다. 탄산이 들어있어 톡 쏘는 맛도 있으면서
도수도 높지 않아 물처럼 시원하게 쭉쭉 들이키게 된다.
사람들이 대체 무엇으로 만들었냐고 묻자 송씨는 "대나무로 만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손님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대나무에서 연분홍
고운 빛깔이 나올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송씨는 "나 조차도 그 신비를 풀지 못했다"며 "잊어버리기 전에 이 제조법을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이처럼 송씨는 대나무 술 제조에 남다른 애착과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집안에서 전수돼 오던 죽력고를 살려내기 위해 서울 중앙도서관 등을
뻔질나게 오가며 각종 문헌을 죄다 복사해 번역했다.
"옛 노랫가락에 양반가 몰락을 비유한 게 있어요. '죽력고 어데가고 모주 한 잔 없더라'라는 내용입니다. 그만큼 상류사회에서 흔한 게 '죽력고'라는
술이었어요.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 죽력이 약재라는 이유로 술을 빚을 수 없게 된 겁니다. 이 사슬을 풀기 위해 서울행 고속버스를 탄 횟수는
기억하기도 어렵습니다."
결국 10여년의 노력 끝에 국가로부터 죽력을 이용해 전통주를 담가도 좋다는 허가를 받아냈다. 그리고 그 해(2002년) 12월 '아름다운 술을 찾습니다'
라는 전통주 공모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죽력고는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듬해엔 전북도 무형문화재 6-3호로 지정되는 쾌거도 이뤄냈다.
최남선이 꼽은 3대 명주...전봉준 장군도 마신 술
그녀는 갖은 약재를 가지고 송씨 가문에 시집와 태인 양조장을 경영하던 남편과 함께 전통주를 빚었다. 남편 송씨가 중풍으로 쓰러졌을 때 치료약으로
죽력고를 내려 마시게 해 완치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죽력고 제조기법에 관한 기록은 없다.
최남선은 '조선상식 문답'에서 평양 감홍로(甘紅露), 전주 이강고(梨薑膏)와 함께 죽력고(竹瀝膏)를 우리나라 3대 명주로 꼽았다. 특히 매천 황현이 쓴
'오하기문(梧下記聞)'에는 '전봉준이 전북 순창 쌍치에서 일본군에 잡혀 흠씬 두들겨 맞고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서울로 압송될 때 죽력고를 먹고
기운을 차렸다'는 기록이 있다.
죽력고는 비용도 많이 들고 빚기도 까다로운 술이다. 죽력고를 내리기 위해서는 우선 밑술과 죽력(竹瀝)을 준비해야 한다. 모든 증류주는 밑술이 있어야
하는데, 밑술은 효모균이 살아 있는 발효주이고, 10도대의 저도주다. 밑술은 곧 청주인 셈인데, 그냥 마셔도 된다.
3주에 걸쳐 밑술을 빚고, 사흘을 지켜 서서 죽력을 내리고서야 비로소 소주고리를 얹어 죽력고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송씨는 스스로 소주고리에 손을
대기 전까지 죽력고가 이렇게 탁월한 술인지 몰랐다고 한다. 간 해독 능력이 뛰어난 데다 당뇨와 혈압에도 좋다는 것이다.
"죽력고가 무형문화재면 뭐합니까. 은행을 찾아도 재산이 없어서 자금을 못주겠다는데…."
송씨는 어렵게 살려낸 죽력고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다시 빛을 잃게 될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었다.
"죽력고가 세상에 다시 나오자마자 전국 각지에서 전수받으려고 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예요. 어쩔 땐 하루에 수십 명씩 몰려옵니다. 헌데 장소가
마땅찮아 간이천막 처 놓고 시멘트 바닥에 앉아서 강의를 한단 말이에요. 그러다 쉬거나 밥 먹을 때는 저 옆에 있는 남의 집 처마 그늘에 앉아있고요."
그는 이 답답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계속 쏟아냈다. 송씨는 낡은 양조 시설을 바꿔보고 싶어도 전통주 제조에 관한 배려가 없는 현실이 아쉽다고
말했다. 정읍에서 술이 문화재로 지정 된 경우는 죽력고가 유일하다.
흔히 '문화재'라 하면 의당 전수관 정도는 기본으로 마련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것은 말 그대로 문화의 소산으로 역사상·예술상 가치가
높은 것으로서 소중히 지키고 보존해나가야 할 문화재에 대한 배려가 아니다.
"최소한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 비 가림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송씨의 말이 안타깝게 맴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전북 정읍지역신문 '정읍시민신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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