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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밀양박씨 사문진사공파

by 치돌이 2009. 9. 10.

박씨의 시조는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1 世)로 시작한다.

시조왕의 탄생은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 전설로 나오는데 기원전 69년에 서라벌육촌의 촌장들이 알천 언덕에 모여

군왕 추대를 논의하고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경주의 남산아래 우물 수풀사이에서 무지개 같은 서기가 뻗쳐 가서 보니

포가있어 포를 풀어헤치니 그 안의 알에서 남자아이가 탄생하시니 이분이 박씨의 시조이다.

왕비로 알영부인이며 재위 61년 3월에 73세로 서거하였다(왕릉은 경주시 탑동 오능 안)


2대 남해왕-3대 유리왕 5대 파사왕- 6대 지마왕-7대 일성왕-8대 아달라왕-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55대 경애왕 등

신라 왕 중 박씨 성은 열분이다.


중시조는 밀성대군파(30 世)

경명왕계는 아홉 아들로(박씨의 대부분은 밀성대군파)

① 밀성대군파②고양대군파③속함대군파④죽성대군파⑤사벌대군파⑥완산대군파⑦강남대군파⑧월성대군파⑨국상공파로 분파

박씨의 16대 종파로는

①밀양(밀성대군파)②고령(고양대군파)③함양(속함대군파)④죽산(죽성대군파)⑤상주(사벌대군파)⑥전주(완산대군파)⑦순천(강남대군파)

⑧월성(월성대군파)⑨울산(국산공파)⑩경주(계림대군파)⑪경주(대무신공파)⑫경주(녹대부공파)⑬면천(면천군파)⑭여주(사라공파(⑮비안(상서공파)

⑯사천(사천군주공파)


중조는  대동보에서는 사문진사공파, 파보에서는 간의대부공파

문하시중공파(37世) -의신(38世)-사문진사공파(39世), 셋째동생 林이 반남으로 관적-간의대부공파(45世,고려

공민왕때)-군수공파(50世, 묘 완주 비봉 내월곡 요덕사)-승재공(58世,1704년 별세,묘 오천리 산 21)

 

※ 장남 효신(38世)에서 은산군파,향산공파,좌상공파,규정공파 분적

 

승재공 내력

승재공 할아버지께서는 병자호란(1636년)후 사회의 혼란을 피하여 1680년대에 익산군 함열읍 학선동(함열 갈매골)에서

진안읍 물곡리 마루들(종평)과 숯거리(서나무정이)에서 5대까지 살아오던중 화재를 당하여 순(淳)자 할아버지 代(1880년대)에

종평,궁동,상전 원가막 분산 거주

  

동철(59世,1768년 별세,묘 부귀면 황금리 노래재 성터안)-의(60世,1806년 별세,묘 상전면 주평리 산206)-기량(61世,1826년 별세,묘 상전면

주평리 꽃봉산)-운선(62世,묘 상전면 주평리 산234, 꽃봉산)-경순(63世,묘 상전면 주평리 산206 석사곡)-상해(64世, 1926년 별세, 묘 물곡리

종평 뒷산)-주덕(65世,1964년 별세,묘 오천리 산5)-재구(66世,1970년 별세,묘 물곡리 종평 뒷산)-남석(67世)- 나(68世)

 

 

 

 

65세이신 주 할아버지(증조부)묘소 -

오천리 평촌마을 뒷산

 

 

 

 

 

 

 

 

 

 

 

 

 

 

 

 

 

66세이신 재 할아버지(할머니 두분)묘소 - 종평마을 뒷산 

 

 

 

1. 관향의 유래

  밀성박씨(密城朴氏)의 시조 박언침(朴彦沈)은 신라 경명왕(景明王)의 팔대군(八大君) 중(中) 장자(長子)로 밀성대군(密城大君)의 봉함을 받아 관향이 유래하며 칠대손(七代孫) 태사공(太師公) 박언부(朴彦孚)와 오대(五代)에 걸쳐 부원군(府院君)에 봉해졌고, 수대(數代)에 걸쳐 높은 벼슬을 지냈으며 지금 밀양 영남루(嶺南樓)에 밀성대군을 향사(享祀)하는 단소(壇所)와 밀성재(密城齋)가 있고 밀성박씨(密城朴氏)를 지금은 밀양박씨(密陽朴氏)로 한다.


2. 이거(移居)와 분파(分派)


1) 전객령파(典客令派)

  전객령파(典客令派)는 밀성대군(密城大君) 박언침(朴彦沈)의 13대손(代孫) 은산부원군(銀山府院君) 박영균(朴永均)의 3자중 차자(次子) 밀성부원군(密城府院君) 시(諡) 충의공(忠毅公) 박천경(朴天卿)이 조선 정종조(定宗朝) 중정대부전객령(中靖大夫典客令)을 지내 후손을 전객령파(典客令派)라 하며, 사대손(四代孫) 박승백(朴承伯)은 조선 중종조(中宗朝) 순천교수(順天敎授)와 경상도순무어사(慶尙道巡撫御使)로 재임시 나라의 기묘사화(己卯士禍)로 그의 자(子) 박덕순(朴德純)은 미관(未官)의 몸으로 진주(晋州)에서 성주(星州) 륜동(倫洞)에 피신하여 은거했다. 이에 후손들은 벼슬을 멀리하고 학문에만 열중하여 설봉(雪峰) 박찬(朴澯), 사옹 박명윤(朴明胤), 학연(學淵) 박진구(朴震耉), 인재(仁齋) 박성시(朴聖時) 등은 사림에 추앙을 받았고 전객령 후손들은 성주(星州) 일원에 산거(散居)한다.

 

2) 사문진사공파(四門進士公派)

밀성대군(密城大軍) 박언침(朴彦沈)의 구대손(九代孫) 사문진사(四門進士) 박원(朴元)을 파조(派祖)로하며 사문진공(호(號) 용암(龍岩)) 박운(朴雲)은 사마시관(司馬試官)을 역임했고 17대손(代孫) 박효봉(朴孝鳳)은 선산군(善山郡) 양산에서 성주(星州) 초전(草田) 용봉으로 이거(移居)하여 집성촌(集姓村)을 이루어 살고 있다.

 

3) 좌상공파(左相公派)

밀성대군 박언침(朴彦沈)의 13대손(代孫) 시(諡) 문정공(文定公) 박춘(朴椿)은 여말 밀직부사(密直府使) 좌상(左相)에 봉임(奉任)되여 후손은 좌상공파라 하며, 문정공(文定公) 박춘(朴椿)의 13대손(代孫) 청암(淸庵) 박규망(朴圭望)은 전남 구례에서 성주(星州) 갈전에 입향하여 후손들이 성주(星州)일원에 산거(散居)한다.

4) 규정공파(糾正公派)

밀성대군 박언침(朴彦沈)의 15대손(代孫) 규정공(糾正公) 박현(朴鉉)(사헌부규정(司憲府糾正))을 파조(派祖)로하여 후손을 규정공파(糾正公派)라하며 오대손(五代孫) 청제공(淸齊公) 박(朴) 문(門)의 육대손(六代孫) 박종현(朴宗賢)은 조선 세조조(世祖朝)에 단종복위운동에 연루되어 성주 죽관에 은거하여 후손들이 살았다. 팔대손(八代孫) 박증영(朴增榮)(눌제공(訥齊公) 성종(成宗) 23년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오형제는 갑자사화(甲子士禍)와 중종(中宗) 14(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연루되었다가 중종 28년(1533) 귀양에서 풀려 청주 목과동으로 낙향하여 살았다.

눌제공(訥齊公)의 이자(二子) 박혜(朴蕙)(주부공(主簿公))의 손(孫)인 박유현(朴有賢)(증(贈) 참판(參判), 호(號) 한산제(寒山齊))는 인조(1636) 병자호란 때 란(亂)을 피해 자(子) 박안련(朴安連)을 데리고 성주(星州) 거곡(巨谷)으로 피난함에 따라 주부공(主簿公) 후손이 성주(星州) 선남(船南) 도성리(道成里)에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규정공(糾正公) 11세손(世孫)인 선곡공(仙谷公) 박안현(朴顔賢)은 선조때 도승지(都承旨)를 지내고 선곡공(仙谷公)의 사세손(四世孫)인 박시윤(朴時潤)은 숙종朝 때 금수면(金水面) 죽천으로 이주한 입향조이다.

손(孫) 박계도(朴繼道)는 영조 때 무선전관(武宣傳官)을 지냈고 질(姪) 박수민(朴秀敏)은 정조 때 성균진사(成均進士)를 했다. 후손들은 수름재를 중심으로 살고 있다.

 

5) 인(忍) 당(堂) 파(派)

밀성대군 박언침(朴彦沈) 15대손(代孫) 박소(朴昭)(인당공(忍堂公))를 파조(派祖)로 하고 인당(忍堂)의 오대손(五代孫) 박윤련(朴閏連)이 임란시(壬亂時) 밀양에서 대가(大家) 금산리(金山里) 삼산(三山)으로 세거(世居)했으며 인당(忍堂)의 12대손(代孫) 박준익(朴駿翼)이 예조참판(禮曹參判)을 지냈다.

 

6) 국(菊) 당(堂) 파(派)

밀성대군의 15세손(世孫) 박흥생(朴興生)의 호(號)는 국당(菊堂)이다. 고려 공민왕(1374년)때 진사급제(進士及第)로 려흥(驪興)과 춘천(春川)의 교수(敎授)와 선교랑(宣敎郞)을 역임했다. 밀성대군(密城大君)의 22세손(世孫) 숙종조(肅宗祖) 어모장군(禦侮將軍) 충무위부사과(忠務衛副司果)를 지낸 박문업(朴文業)은 벽진(碧珍)·가수촌(加樹村) 입향조(入鄕祖)이며, 후손은 성주(星州)일원에 산거(散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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